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918년 [[소비에트 러시아]]가 [[리투아니아-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]]을 설립하고 이후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지나, 제대로 역할도 못 하고 쫓겨난다. 그 후 [[1918년]]에 [[러시아]]로부터 독립했던 [[리투아니아]]는 1940년 6월, [[제2차 세계 대전]] 기간 중 소련에 점령되었고,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설립된다. 같은 해 8월 리투아니아는 소련에 흡수된다. 1990년 3월 11일에 독립을 되찾았다. 1941년 6월에 [[나치 독일]]이 리투아니아 전역을 차지하고 이후 [[발트 3국]] 전역 및 벨라루스 일부 지역을 점령해 [[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]]를 세워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기능이 정지되었던 시절이 있었으나 1944년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탈환해 다시 효력이 시작되었다. 이 나라도 [[라트비아]], [[에스토니아]]와 같이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[[소련]]의 괴뢰정권으로 보고 [[리투아니아 제1공화국]]을 계승하는 입장이다. 리투아니아 SSR은 [[소련]]의 구성국들 중에서 가장 독립의 열기가 강했다. 1950년대부터 계속해서 지하세계에선 카톨릭 문학이 발행되었으며, [[1972년]]엔 한 고등학생이 소련에 반대하며 [[분신자살]]까지 하기도했다. 2차대전 직후 [[칼리닌그라드주]]가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흡수될 뻔했다. [[이오시프 스탈린]]이 이 지역을 전략적 거점 지역으로 간주하여 소련 영토로 흡수하게 되는데, 러시아와 직접 접해있지 않고 역사적으로도 독일인들이 정착하기 이전에는 발트족들이 거주했던 땅이었으니까 인근에 위치한 [[구성국]]인 리투아니아에 흡수시키려 했던 것. 하지만 리투아니아의 공산당 지도자인 [[안타나스 스녜츠쿠스]](Antanas Sniečkus)가 거절해서 [[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]]의 [[월경지]]가 되었다. 정확히는 독립국이었던 전간기에 점유하고 있다가 히틀러의 강압으로 독일에 넘겨줬던 [[클라이페다]]만 다시 넘겨받았고 나머지(동프로이센의 거의 전부)를 받지 않았다. 칼리닌그라드 주는 독일인들을 추방하고 소련군의 다수를 이루는 러시아계가 이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는데, 스녜츠쿠스가 리투아니아 안에 러시아계가 늘어나는 것을 꺼려서 거절했다고 한다.[[https://www.quora.com/Why-wasnt-Kaliningrad-given-to-the-Lithuanian-SSR-rather-than-Russia|#]] 만약 칼리닌그라드주를 받았다면 소련 해체 시 칼리닌그라드주가 리투아니아의 일부 지방으로서 독립했을 것이고, 그랬으면 러시아인들의 인구가 리투아니아 인구의 1/4 이상을 차지해 국정운영에서 러시아계 주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슷한 이유로 러시아인들의 비중이 높은 에스토니아, 라트비아처럼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